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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여기저기서 태클이 많이 들어온다. 워낙에 연초마다 여러 언어를 전전하다보니 양치기 소년 보듯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지만, 하필 왜 스페인어냐는 질문도 많이 한다. 그래서 스페인어를 배우려는 이유들을 곰곰히 정리해봤다.

첫째, 여행하면 스페인.
동기들과 농담 삼아 올 해 반드시 유럽 축구 일주를 하자고 했다. 축구 하면, 역시 스페인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축구 아니더라도 오래전부터 해외 여행을 간다면, 형편과 상관없이 상관없이 여행지를 고를 수 있다면, 스페인이라고 찍어놓고 있었다.

둘째, 탱고, 그리고..
음악하면 역시 라틴 아니겠는가? 뭣보담도 탱고. 그리고, 부에노 비스타 소셜 클럽을 통해 들었던 쿠바 음악들. 관따나메라와 빅토르 하라로 대표되는 중남미 민중음악들. 아울러 포르투갈의 파두와 스페인 집시들의 음악까지.

셋째, 영어가 안통하는 나라.
북유럽은 영어만 해도 대충 산다고 할 정도라지? 그에 반해 남유럽에서는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없어 영어로는 밥도 못먹는단다. 그렇다고 프랑스처럼 자존심이나 영국과의 경쟁심 때문은 아닌 거 같고. 어쨌든 스페인어를 배워야 편하게 여행할 수 있다는데..

넷째, 남유럽은 남유럽끼리.
스페인만 아니라 남유럽은 다 그렇단다. 아마도 남쪽 따뜻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낙천과 게으름의 유전자가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거 아닐까? 그런데, 스페인어를 하면, 이탈리아어나 포르투갈어가 대충 눈에 보인다고 한다. 독일이랑 북유럽 국가들이 그렇듯이, 라틴어는 라틴어끼리 친한 모양이다.

다섯째, 운동하면 중남미.
멕시코 혁명, 쿠바 혁명, 볼리바르 혁명.. 혁명의 전통으로 가득한 중남미. 게다가 다른 나라들보다 10년 먼저 신자유주의를 경험했기 때문일까? 확실히 라틴 아메리카에는 새로운 시도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사회포럼에서부터 쿠바의 생태농업, 아르헨티나의 노동자 자주관리, 브라질의 참여예산, 그리고 나는 아직 판단이 잘 안서지만 차베스까지.

여섯째, 대세는 스페인어.
서구에서는 제2외국어로 가장 많이 선택하는 언어가 스페인어라고 한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오피셜 랭귀지 수준까지 올라가고 있다지 않은가? 그래서 서어서문과에서는 자신들의 시대가 올 거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미 몇 십년 전부터 그랬다는 거다. 도대체 그 시대는 언제 오는 걸까?

일곱째, 배우기 쉬운 언어.
스페인어가 제2외국어로 많이 선택되는 이유. 배워보니 알겠다. 한국에서 일본어 많이 배우는 이유와 같다. 처음 배울 때 그 어느 언어보다도 쉽다. 독어보다도 발음이 규칙적이다. 게다가 독어보다 문법도 간단하다. 더 좋은 것은 불규칙이 적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남유럽어들이 라틴어를 가장 원형에 가깝게 보존하고 있는 언어들이기 때문이겠지. 제일 좋은 건 읽기 편하다는 점이다. 왜냐면, 가끔 불규칙 강세가 나올 때 단어 자체에 강세를 달아준다. 또 똑같은 단어를 서로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사용할 때도 표시를 해준다. (예컨데, 영어에서 when이나 how같은 의문사는 관계(대명,부)사로도 쓰인다. 처음 배울 때, 이게 뭘로 쓰이는지가 늘 햇갈린다. 스페인어에서도 의문사는 관계사로 쓰이는데, 의문사로 쓰일 경우에는 단어에 강세표시를 해주기 때문에 구분하기 쉽다. 예 : como(=how)-관계사, cómo-의문사)

여덟째, 기왕이면 UN 공식 언어.
UN 공식 언어가 여섯 개가 있다. 영어, 불어, 중국어, 스페인어, 아랍어, 러시아어. 기왕이면 이 중에 하나를 배워야지. 그러나 불어, 아랍어, 러시아어는 엄두가 안 난다. 중국어도 잠깐 시도해봤으나 난감했다.

아홉째, 역시 문제는 호구지책.
한국에서는 스페인어를 경험해본 사람조차 1%가 안된다. 정말 스페인어가 대세라면, 잘 배워두면, 다른 언어를 쓰는 것보다 호구지책으로서의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며칠 전 스페인어 학원을 마치고 몇몇 친구들을 만났다. 그 친구들 역시 내가 스페인어를 배운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어 했다. 위에서 이야기한 이유들을 구구절절이 늘어놓았으나, 타박만이 되돌아왔다.

한참 타박을 받고 나서 화제가 바뀌었다. 친구 중 한 녀석이 그의 다른 패거리와 함께 술집에 있다 옆 테이블에 있던 여자들과 합석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 한 아르헨티나 교포 출신의 한 여자가 갑자기 이 친구에게, 그것도 모두들 보는 앞에서 키스를 퍼붓더니. 결국은 그 날 원나잇을.. 그 자리에서 얘기를 듣던 다른 한 친구 왈, "오, 역시 남미가 개방적이야.." (오늘 인종주의적 발언 여러 번 한다..) 그 말을 듣던 나, "거 봐. 그러니까 내가 스페인어를 배우려는 거야." 유일하게 타박받지 않은 이유였다. ㅋ
Posted by 시민행동 싸만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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